본문 바로가기
  • Life in Australia

고양이 다이어트 셔벗의 살과의 전쟁

by thegrace 2020. 5. 14.

하...


한숨이 나온다. 의욕상실이다.




얼마 전부터 가족이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짐을 느낀다. 내가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아무리 처절하게 울부짖여도 모른 척한다. 


내 그릇에 밥이 없는데.


간식도 안 준다. 내 음식 저장고에 코로나바이러스 대비를 위해 왕창 사다 놓은 식량이 넘치는 데도 주지를 안는다. 

내가 알아듣는 인간의 몇 안 되는 언어 중에 가장 듣기 싫은 게 몇 가지 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자동으로 입력이 돼버렸다. 


셔벗 노!, 안돼!, 뚱뚱해, 그만 먹어, 노 모어 스낵, 오~뱃살, 다이어트 해야 돼. 


난 요즘 내 살과의 전쟁, 바로 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긴긴 싸움은 3년 전 이 집의 가족이 된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내게 이런 뽀샤시한 시절이 있었더랬다. 볼살도 없고, 이중턱도 없고 허리도 갸름했던.

나이는 1살 반, 몸무게 4kg.



하지만 지금은. 



나도 DoubleJMOM님이 말씀하신 그,  확찐자가 되었다. 

내 사생활 보호를 위해 현 몸무게는 공개하지 않겠다. 사진을 보면 대충 짐작 하리라 생각된다.

.

.

.

얼마전, 언니가 말했다. 

"셔벗, 너무 뚱뚱해. 엄마 밥 좀 조금만 주고 간식도 주지마."


언니는 완전 칼이다.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인간이다. 내가 아침에 아무리 이쁜 척 해도 자기 밥만 챙기는 그런 사람. 

아빠나 엄마는 내가 계속 울어대면, 안된다고 하시다 가도 몰래몰래 줄 때도 있다. 특히 아빠~! 그는 나의 마지막 히든카드다. 

하지만 언니는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란다. 우리집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갈 때마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은 나를 저울에 올려놓고 말씀하신다.

"음식을 줄이세요. 여기서 조금만 더 찌면 고양이 비만 입니다. 건강에 아주 안 좋아요."


엄마는 내 아침밥을 살 때 칼로리가 낮은 드라이 푸드를 고른다. 맛이 없어서 첨엔 안 먹었더니, 그러면 맛난걸 줄줄 알았더니, 끝내 날 굶기셨다. 

난 참다 참다 너무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그걸 먹어야 했다. 그런데, 먹다 보니 또 맛있다.


그래도 소용없는지 한때는 내 점심 겸 저녁인 웻 푸드(Wet Food)를 반만 덜어 주셨다. 정말 그때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배가 비었는데 어떻게 자나. 난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밤늦도록 깨어있었고, 이를 못 견딘 마음 여린 아빠가 간식을 몰래몰래 주셨었다. 그건 언니랑 엄마는 모르는 비밀.


그래도 살이 조금 빠지는가 싶었는데, 두 달 동안 우리 가족들이 바깥출입을 거의 안 한 뒤로 내가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한 거다. 


그 원인은,

  • 인간들이 집에 있으니 밥을 나눠서 먹는 내 본능이 파괴됐다. 밥 줄 사람들이 집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 그만 나도 모르게 다 먹어버리고 만다.
  • 밥이 그릇에 없으면 심리적으로 불안 증상이 온다. 아빠에게 더 자주 밥을 달라 요구한다. 아빠는 일하시다가 무의식 중에 간식을 던져 주신다. 대박이다. 
  • 가족이 식탁에서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으면 나도 먹고 싶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도 입이 있는데. 그래서 또 간식을 얻어먹는다. 엄마는 내가 아까 아빠한테 간식을 얻어먹었단 사실을 모른다. 언니는 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모른다. 아빠는 혼날까 봐 말 안 한다. 대박이다.
  • 저녁을 넘 일찍 먹는 게 문제다. 예전에는 내 마지막 저녁을 8시쯤 끝냈다. 그러다 보니 잠잘 때까지 간식 2~3개면 딱이었는데, 지금은 6시 전에 내 그릇이 깨끗이 비워진다. 9:30분 잠들기 전까지 전쟁이다. 좀더 먹고 싶어 애쓰는 나와, 덜 주려 노력하는 인간과의 힘겨운 싸움이 매일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확찐자가 돼 버렸고, 급기야 언니는 '강경 대책'을 가족들에게 통보했다. 마치 호주 수상 '스콧 모리슨' 처럼.


먹고 싶은데 못 먹게 하면 당연 스트레스가 쌓인다. 짜증이 나고 급기야 화도 난다. 




오늘 엄마가 간식을 주셨다. 난 보통 때보다 한알을 더 얻어먹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순간에도 엄마의 손을 할퀴지 않기 위해 내 발톱을 최대한 숨기며.





엄마가 사진기를 조작 하느라 한눈 판 사이에 스낵 봉지에 발을 집어넣어 잽싸게 두 알을 꺼내 먹었다. 이건, 언니가 오래전 내게 독립심을 키운 다며 호되게 훈련을 시켰던건데, 이 기술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언니 탱큐.


좀 먹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세상이 아름답다. 난 다이어트 같은건 관심 없다. 내가 옆집 남자 고양이랑 데이트할 것도 아니고. 그냥 나 답게 잘 먹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World Peace~!






▶고양이 셔벗

2020/05/06 - [라이프 Life/호주 일상] - 고양이 셔벗의 하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