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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e in Australia

고양이 셔벗의 하루

by thegrace 2020. 5. 6.

코로나(Covid-19) 사태 여파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인간들에게 별다를 게 없는 하루, 과연 고양이 셔벗의 하루는 어떨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고양이 셔벗의 기록을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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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am

꿈틀꿈틀, 최첨단 디지털시계보다 정확한 나의 배꼽시계가 아침을 깨운다. 난 주저 없이 일어나 앉아 세수를 한다. 눈도 닦고 앞 발가락도 닦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싶으면 난 내게 밥을 줄 인간을 모색한다.

 

 

6am

어느새부터인가 인간들이 제 시간이 돼도 일어나질 않는다. 내 아침밥 먹는 시간이 늦어진 지 벌써 두 달...

한참을 엄마 침대 끝에 앉아 그녀가 눈을 뜨기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잠이 깬 듯하면서도 눈을 뜨지 않는다. 그 옆의 아빠가 몸을 뒤척인다. 나의 온 신경은 아빠를 향하고, 그가 눈을 뜨기를 기다리지만, 몸만 돌리더니 다시 잔다. 실망이다.

 

 

6.15am

언니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난 잽싸게 침대에서 뛰어내려와 언니방 근처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고 나온 언니는 바로 욕실로 향하더니, 잠시 후 나를 그냥 지나쳐 본인의 아침밥만 챙긴다. 그녀가 혹시 나에게 밥을 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다. 언니는 아주 가끔 엄마가 바쁠 때 저녁밥 준 게 내 발가락을 꼽을 정도다.

 

 

6.30am

그래, 우리 집 서열이 제일 낮은 아빠를 공략하자. 그래도 아빠가 제일 내 아침밥을 자주 주는 편이니까. 아빠 얼굴 근처로 슬금슬금 다가가 눈치를 본다. 발도 동동 거려 보고, '쩝쩝' 거려도 보고, 반응이 없으면 나의 필살기 "야옹"을 소리 내 본다. 잠시 후 반응이 나타났다.

 

잠귀가 밝으신 엄마가 아빠에게 뭐라 하더니, 아빠가 바로 반응한다.

 

빙고~

 

오늘도 아빠가 당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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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am

아침밥을 먹은 나는, 오늘의 날씨와 바깥 동태를 살피러 나간다. 이건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하지만 난, 집 밖 반경 1미터 이상을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집고양이라 바깥세상은 두렵다. 난 그리 딱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는 아니다. 유일하게 내가 관심 갖는 건 오직 '음식' 일 뿐! 그래서, 난 절대 집 밖 1미터 이상은 벗어나지 않는다.

 

비가 오거나 춥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엄마가 날 절대 못 나가게 한다. 얼마 전 감기가 걸려서 이주일 가까이 아픈적이 있었는데, 그 후 엄마는 더더욱 날 못나가게 한다.

 

엄마는 얼마전 내 목도리를 짜 주셨다. 사실 그걸 한다고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니 도저히 벗을 수가 없다. 엄마는 그걸 내 목에 두르며 귀엽다고 사진을 몇 장을 찍었는지 모른다. 난 평생을 코트를 입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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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은 밝고 화창한 날씨다. 이런 날은 바깥 의자에서 잠시 경치를 구경하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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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am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벌써 시간이.

아침에 남겨 두었던 밥을 먹어야겠다. 난 밥을 절대 한 번에 다 먹지 않는다. 만일을 대비해 밥을 나누어 먹는다. 이건 나의 본능이다.

 

아니 근데... 밥이 없다. 

분명 남겨 뒀는데, 언니가 먹었나? 아니다. 언니는 요즘 아침밥 먹고 나면 방에 들어가서 거의 나오질 않는다. 온라인이라나 뭐라나... 학교를 안 가고 방에서 컴퓨터로 무언가를 한다. 분명 언니는 아닌 거 같은데, 내 밥이 다 어딜 갔나? 

 

앗! 생각났다. 내가 다 먹었다. 무의식 중에. 

 

 

 

 

 

아빠를 쳐다본다. 일하느라 나에겐 관심 없다. 

 

엄마를 찾아가 본다. 엄마도 요즘은 무얼 하는지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엔 날 귀찮게 하거나 집에 없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엄마가 날 보며 뭐라 한다. 난 인간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나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단어는 분명 인식한다.

엄마는 분명,"셔벗 스낵...?" 이란 말을 했다. 중요한 건, "셔벗 스낵"이다.

 

순간 나는 엄마 가까이 다가가 애교스러운 몸짓을 해 보인다. 이건 바로 생존 기술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마음을 녹여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더 주게끔 만드는지에 대한 건 학교를 안 가도 다 아는 사실이다.!

 

엄마가 던져준 간식 두 알을 얻어먹고, 난 생리 현상을 느껴 화장실로 향한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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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pm

드디어 고대하던 점심시간이다. 요즘 집에 있는 우리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볼일들을 보고 오후 1시가 되면 식탁으로 모인다. 나도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두 달 전엔 아침을 먹고 나면 오후 4시가 돼야 내 마지막 저녁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인간들이 집에 머무르는 후론 맘이 편해선지 아침밥을 빨리 먹어버리는 바람에 이 시간이 되면 나도 배고프다. 

 

식탁에 앉은 가족들이 밥을 먹는 동안 나도 내 점심 겸 저녁을 먹는다. 중요한 건 절대 다 안 먹고 조금 남겨 둬야 한다는 거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난 낮잠을 잔다. 해가 좋고 따뜻한 날은 바깥 내 지정석에서 자고, 바람이 추운 날은 어디든 내가 자고 싶은 데서 잔다.

 

요즘은 아빠가 일하는 옆 의자에서 자거나, 엄마가 컴퓨터를 하는 옆 방석 위에서 잔다. 

 

인간들이 날 건들지만 않으면 난 내리 4시간도 잔다. 하지만 항상 언니랑 엄마가 나를 쓰다듬는다. 난 잠을 깊이 자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다가오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사실, 귀찮지는 않다. 오히려 기분이 좋다. 특히 내 엉덩이를 두드려 주면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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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pm

벌써 저녁시간이다. 언니가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일찍 밥을 먹는다. 그럼 당연히 나도 배고프다. 아까 남겨두었던 저녁밥을 깔끔히 해 치운다. 이로써 나의 공식적인 하루의 식사가 끝났다. 아쉽다.

 

 

7pm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놀이가 끈 잡기다. 난 그다지 럭셔리한 토이나 활동적인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가족을 만났을 때 그들은 나에게 과분할 만큼의 장난감들을 사 주었다. 하지만 난 별 관심이 없었다. 레이저 불이 나오는 것 외에는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언니랑 엄마는 실망한 모습이었지만, 뭐 어쩌겠나. 난 그런 토이들을 이미 졸업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끈은 언니가 막대기에 달아준 언니의 파란색 리본이다.

 

내 고정 매트 위에서 흔들어 주는 리본을 몇 번 잡다 보면 피곤해진다. 난 저질 체력인가 보다.

 

 

7.30pm

엄마가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서 조용히 엄마의 뒤에 앉아 지켜본다. 엄마는 어느새 내가 와 있다는 걸 귀신같이 안다. 아무 소리도 안 냈는데.

 

엄마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 하지만 항상 럭키일 수만은 없다. 아~주 가끔 엄마가 특식이라고 질이 좋은 생고기를 조금 주신다. 난 그걸 기대하지만, 엄마는 동물병원 의사의 말대로 내 살이 더 이상 찌지 않게 음식조절을 완강히 하신다. 오늘은 꽝!이다.

 

 

 

 

9pm

엄마가 있는 방으로 간다. 정확히 이 시간이다. 엄마는 '치카치카'라면서 항상 나에게 덴탈 스낵을 주신다. 그걸 얻어먹기 위해 나는 이 시간을 기다린다. 꽤 맛난다. 2~3개 얻어먹지만 운이 좋으면 4개도 먹는다. 가끔 아빠한테 가서 안 먹은 척하고 두 개 더 얻어먹는다.

 

9.30pm

오늘도 엄마 옆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은 엄마 옆이 딱이다. 엄마는 추위를 타서 따뜻한 이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난 그게 좋다. 그리고 엄마한테 궁둥이를 데고 자면 안심이 된다. 가끔 새벽에 이쁘다고 궁둥이도 쓰다듬어 주시고 뽀뽀도 해주고 등도 만져준다. 난 그래서 엄마 옆에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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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루가 간다. 별다를 게 없는 일상이지만 난 먹기 위해 사는 고양이다. 세상에서 무엇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치킨'과 '스낵', 그다음이 가족이다. 

 

오늘도 무사히 내 밥과 간식을 다 챙겨 먹었다. 내일 아침엔 누가 나의 밥을 줄 인간으로 당첨이 될지 심히 기대된다.

 

굿 나잇!


▶고양이 셔벗

2020/04/30 - [라이프 Life/호주 일상] - 고양이 셔벗의 인생 첫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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