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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e in Australia

머리카락 기부하기 함께사는 세상의 의미

by thegrace 2020. 5. 23.

친숙한 기부문화 Donation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기부

 

 

호주에서 살면서 느끼는 여러 좋은 문화중에 하나가 기부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부가 조성이 되는 종교단체에서 뿐만이 아니라,  학교, 직장 그리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수없이 많은 기부의 기회를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적게는 동전부터 많게는 지폐 몇 장 정도의 기부는 그렇게 큰 부담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부에, 작지만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하루는 아이가 3살 때 다니고 있던 동네 프리스쿨(preschool)에서 이메일이 왔었는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용돈이나 저금통에서 동전 일부를 떼어 기부를 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단, 절대로 부모가 돈을 주지 말 것, 10센트라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돈만을 보내 달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어떻게 쓰일 것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도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사는 방법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선생님의 글을 보고, 아이의 허락하에 딸의 지갑 속에 들어있던 동전을 세어 보았습니다. 5센트까지 끌어모아 약 $5 가까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돈을 봉투에 담아 이름을 써서 아이편에 보내준 뒤, 약 한 달 후 선생님의 초대에 딸아이의 프리스쿨에 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들이 볼 수 있게끔 한쪽 벽에 기부금이 쓰인 내용들이 사진들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료들을 아이들과 함께 정리를 했다고 했습니다.

 

20명의 아이들이 모은 돈과 선생님 자신이 조금 보탠 돈의 내역을 보여주었는데 사실 $100이 조금 넘는 정도의 소액이었습니다. 한데, 그 돈으로 인도네시아의 아주 외진 시골마을에 닭 몇 마리와 염소 한 마리, 소 한 마리를 사 줄 수 있었답니다. 그걸 기부받은 시골마을 사람들은 감사하다는 편지와 새로 생긴 가축들을 데리고 찍은 사진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딸아이는 자신이 내었던 돈이 이렇게 세상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고 아직도 선명히 기억할 만큼 그 교육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저 또한 기부란 큰돈이 아니어도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면 그 효과는 대단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머리카락 기부를 하게 된 이유

Hair Donation

 

 

어떤 특별한 결심과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것이 아닌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뉴스를 통해 이런 단체의 활동을 알게 되었고, 아이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머리카락 기부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때 머리 자르기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유독 숱이 많고 건강했던 아이의 긴 머리카락은 예쁘긴 했지만, 저는 매일 관리해주기가 귀찮아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만 자르자고 설득하곤 했었고, 아이는 언제나 단호히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티브이를 통해, 암을 앓고 있어 머리카락을 잃은 어린아이들이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단체를 통해 가발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아이와 함께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가발을 쓰고 무척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기전 우연한 기회에 시드니의 아동 전문 병원(Randwick, Sydney Children's Hospital)에서 하루 봉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호주 출신의 유명 할리우드 배우인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을 비롯해 많은 기업인들과 유명인들이 기부를 많이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병원은 호주 정부의 의료보장제도에 따라 모든 아이들의 치료비가 무료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으로 운영이 되는 곳입니다. 딸아이에게 그때 제가 봤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 줬더니, 아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길어서 기부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불쑥 꺼내더군요.

 

어린아이의 생각이 매우 기특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저는, 아이에게 한번 검색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게 시작이었을 뿐입니다.

 

 


 

Variety (버라이어티) 기부단체

Hair with Heart

 

 

Variety라는 곳이 아이가 찾아본 것 중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이라 하더군요. 버라이어티는 그 말 그대로 다양한 기부활동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아픈 아이들을 위해 모금을 하는 단체입니다.

 

1975년 시드니에서 시작된 버라이어티는 호주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활발한 자선 행사를 펼칩니다. 아마 호주의 거의 모든 가정에, 버라이어티에 기부를 하고 받은 작은 인형들이나 물품들을 최소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곳은 아동 전문 병원 지원에서부터 아픈 아이들에게 필요한 의료 물품, 여러 교육 프로그램과 테러피 서비스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돕고 있습니다. 그중에 머리카락 기부 활동도 포함됩니다.

 

웹사이트에는 머리카락 기부 방법과 절차가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 수 있게 보내주는 기부와, 주위 사람들과 함께 기부금을 모아 머리카락과 함께 보내주는 두 가지 방법으로 크게 나뉩니다.

 

저도 아이와 함께 하면 더 좋은 의미가 되겠다 싶어서 자세한 내용을 봤더니, 머리에 어떠한 화학적 처리를 하지 않은 건강한 자연 그대로의 머리카락이어야 된다고 합니다. 는 오래전부터 염색을 해온 탓에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머리카락 길이는 최소 14인치(35.5cm)이어야 한다는데, 그때 아이의 머리카락 길이는 약간 모자랐었습니다. 그래서 약 6개월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머리를 자르기 싫어서 길었을 뿐인데, 버라이어티에 머리카락을 기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로는 그 마음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아이는 빨리 자라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매일매일 자로 재어보며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자신은 머리카락 수가 많아서 아마도 가발을 더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답니다.

 

 


 

머리카락 기부 현장

실제 상황입니다.

 

드디어 머리를 자르러 갔습니다. 머리를 자르기로 한날 이왕이면 짧아지는 머리카락도 다듬을 겸 헤어 숍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꽤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혹시 아이의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지를 물었습니다. 기부를 하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먹긴 했지만 수년을 길러오며 아끼던 머리카락을 막상 자르는 게 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머리카락을 기부하겠다는 아이의 마음은 확고하다고 했습니다. 단지, 긴장이 조금 된다고 하더군요.

 

 

 

머리를 깨끗이 감고, 자를 곳부터 끝까지 여러 번 고무줄로 흐트러지지 않게 단단히 묶습니다. 웹사이트에서 봤던 다른 아이들의 머리카락 수보다는 확실히 많더군요. 자르기 전에 한번 더 물었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은 상기되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이가 내키지 않는 다면 절대로 계속 진행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는 자신은 이미 마음먹었으니 그만 묻고 빨리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긴장한 이유는 나중에 얘길 하겠다고요. 

 

자른 머리카락은 깨끗한 봉투에 담아 아이가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모은 돈을 같이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감사하다는 글과 함께 머리카락을 기부한 아이들에게 주는 상장 같은 종이도 들어있었습니다.

 

 

 

 

아이는 무척 기뻐했고, 저는 짧아진 아이의 머리카락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하게 된 헤어 도네이션(Hair Donation)이었지만, 아이가 일생에 한번 정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머리카락을 기르다가도 본인이 답답해 자르고 싶어 하다 보니 그때 아니었으면 아마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며칠 후에 그날 아이가 긴장한 이유에 대해 들어보니, 그날 자꾸 아픈 아이들이 생각이 나더랍니다. 암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을 잃어버렸지만 사진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 아이들의 얼굴들이 생각나면서 기분이 이상해졌었답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어떤 아이에게는 필요한 가발이 되고, 그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걸 깨달은 아이는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던 거 같습니다.

 

 


 

다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교육

 

학교에서는 골드코인 도네이션(Goldcoin Donation)이라는 작은 기부 행사들이 자주 있습니다. 호주의 $1, $2 동전이 금색이다 보니 골드코인 도네이션의 날엔 이 동전들을 기부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어떤 날은 머리 모양을 이상하게 하고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웃기게 생긴 양말을 교복에 신고 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날은 돈 받고도 쓰지 않을 가발을 쓰고 갑니다. 그날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며 기부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전, 제 아이와 친구 아이가 길거리에서 함께 첼로를 한 시간 넘게 연주하고 상당히 많은 액수의 돈을 모아 그중 일부를 기부한 적도 있습니다. 부모인 저희들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늘이긴 했지만 더운 여름날 자기 몸 크기만 한 첼로를 들고 나와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는지, 많은 분들이 그릇 가득 돈을 넣어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아이들에게 칭찬도 아낌없이 해 주셨고요.

 

이곳에서는 버스킹이라고 하여 종종 자신이 배우고 있는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를 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목적은 단순히 아이의 대중 공포심을 없애기 위함이거나, 작은 용돈을 모으는 경험을 위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연주로 모은 돈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크던 작던 자신이 할 수 있는 기부활동을 자주 경험하게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한 습관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쭉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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