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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e in Australia

엄마의 뚜렷한 주관이 필요한 자녀의 음악 교육

by thegrace 2020. 8. 29.

#2. 아이의 음악 교육에 대한 생각 by thegrace

 

자신감과 자존감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아이의 강한 자존감 형성과 발달에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다가 아이의 음악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동네 피아노 학원을 수년을 다녔었고 다수 대회에서 입상했던 경험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마저도 놓은 지 오래되다 보니 연주하는 법도 거의 잊였습니다. 그나마 그 경험이 제게 좋은 영향을 준 것은, 클래식 음악에 친숙하고 적어도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면 무엇이 틀렸는지를 알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10년을 훨씬 넘게 했던 피아노 연주법을 거의 잊여 버린 제 경험상, 잘못된 음악 교육은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 아이의 음악 교육은 시작부터 잘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처음 악기를 만난 것은 4살 초반입니다. 동네 놀이 그룹에 손녀를 데리고 오시는 고상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고등학교에서 음악 교사를 하다가 은퇴를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때는 이곳 호주의 음악 분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다 보니 그분의 소개로 스즈키 음악원의 시드니 총괄 매니저를 만나게 되었고 아이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장난감 같은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임신했을 때 9개월의 심한 입덧 때문에 소리에 극도로 민감해져서 흔한 모차르트도 듣지를 못했고, 태어난 아이는 음악적 취향에 대한 고집이 단호했기에 클래식 음악을 전혀 듣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장난감 같은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에 매우 흥미를 보였고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 재능을 보이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약 3개월 정도를 넘어가는 시기부터 아이는 첼로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1. 바이올린은 서서하기 때문에 무척 힘들지만 첼로는 앉아서 한다. 

2. 소리에 극도로 예민하다 보니 자신이 내는 불협화음과 높은 E String 소리가 귀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첼로는 소리가 묵직하다.

3. 첼로가 바이올린보다 크다.

4. 요요마처럼 연주하고 싶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5살이 된 아이가 충동적으로 악기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에게 말하길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이는 결국 바이올린을 그만두었지만, 저는 그 후 수개월 동안은 악기 교육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는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면 시간이 지나도 분명히 하고 싶어 할 거라면서 일단은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라고 했고, 만일 이번에 악기를 바꾸고 나서 또다시 다른 악기를 하고자 하면 엄마는 악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분명한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아이가 어렸지만, 좀 더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첼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이는 결국 첼로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처음 1/8 사이즈로 시작해서 올해 초에는 Full size의 첼로를 갖게 되었고 현재는 학교 music ensemble에서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악기 연주를 즐기는 아이


제 아이의 음악 교육(악기 연주)의 목적은 평생 음악을 즐기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고 엄마가 좋아하는 곡들을 악보를 보지 않고 언제든 연주해 줄 수 있다면 된 거라고 아이에게 말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Cello Suite No. 1 in G Major, I Prélude를 딸아이가 드디어 연주해주었을 때 음악 교육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 최고의 첼리스트인 요요마(Yo-Yo Ma)의 연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서툴었지만요.

 

Yo-Yo Ma

악기를 시작하고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주도 해보았고 스즈키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통해 실력 있는 지휘자와 다수의 공연도 해보았으며 학교 여러 행사에 참여도 해보았습니다. 아이는 습득의 속도가 빠른 편이었지만 음악인으로서의 재능은 제가 봤을 때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습을 하지 않아도 곡(piece)들을 빨리 끝내 버리지만 소위 소름 끼치는 열정(passion)은 제 기준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한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한때, '대회를 내 보내라', '재능이 있는데 왜 열심히 안 시키느냐', '왜 등급 시험을 보지 않느냐'... 등 많은 조언들이 있었지만, 제 아이는 이곳 호주에서 악기를 다루는 아이들이 보는 등급 시험인 AMEB를 보지 않고 있습니다. 어릴 때 한번, 선생님의 권유로 시험을 준비해보면서 아이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는 제가 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아이의 첼로 악보를 사러 간 악기상의 주인이 자신의 아들도 첼로를 하다 지금은 놓고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웃집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학교 등교하기 전에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두 시간 동안 첼로 연습을 하고, 집에 오면 대부분 6시부터 12시까지 또다시 첼로 연습을 거르지 않던 이웃집 여자 아이는 재능도 훌륭해서 9살에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5살쯤에 부모와 크게 다투고 첼로를 그만둔 아이는 대학에서 방사선과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첼로를 아예 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대립이 심했지만 아이의 선택을 바꿀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자신이 왜 음악을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그림에 맞추어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자신 또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음악을 놓아 버렸습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을 무색하게 할 만한 결정을 내리고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본인은 만족해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 음악교육의 현실은, AMEB 등급시험(Grade)에서 어린 나이에 높은 등급을 빨리 받고 결국에 사립학교 장학생 시험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포트폴리오의 한 줄을 넣는 것입니다. 물론, 소수지만, 뛰어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계속하고자 하는 아이들도 봤습니다. 문제는 다수가 매달리는 악기 교육의 목적이 다른데 있다는 것입니다. 제 아이가 첼로를 한다고 하면 동양인 부모님들은 제게 어떤 등급인지를 묻고,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하면 자신들의 일인 양 걱정을 했었습니다. 실력이 좋은데 왜 시험은 치르지 않는지, 아무런 결과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말씀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걱정이 진심 어린 염려 일 수도 있지만, 저는 반대로 왜 그분들은 아이가 음악가가 되는 걸 원하지 않는 다면서 아이가 악기 연주를 잘하기를 원하는지 강요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정작 힘들어하거나 싫어하는데도 말이죠. 주변 음악 하는 친구들 중에 악기 연습을 강요받는 것에 대한 고통을 호소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아이를 통해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런 아이의 엄마도 자신의 아이가 악기 연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리기 때문에 현실을 몰라서 그런다고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아이가 음악가가 되지 않더라도 배우고 있는 악기를 잘 연주하거나 상을 타고 높은 그레이드를 받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꼭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일단은 어떤 분야든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 본 아이는 다른 무엇을 하더라도 그 만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포트폴리오를 위해 상을 받고 그레이드를 받기 위해 원하지 않는 아이를 몰아가는 것은 좋게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목격한 저로서는 제 아이의 음악 교육에 대해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어쩌면 저의 그런 확고하지 않은 음악 교육방식으로 인해 좋은 연주자가 되지는 못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와 아이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등급 시험은 보지 않았지만, 아이는 학교에서 연주를 할 때 등급시험을 본 선배들보다 악보를 제대로 보고 연주를 잘 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등급 시험이 악기 연주의 진정한 레벨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님을 몸소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받게 된 유명 첼로 선생님으로부터의 평가는 아이에게 더욱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만한 실력이 된다면 단지 시험만 보면 되는데 아이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등급 시험에 필요한 곡들을 연주할 수 있고, 필기시험도 크게 어렵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험 전에 연습하고 준비를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 있는 것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게 더 좋다는 주장을 합니다. 흔한 틴에이져의 핑계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그거대로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본인의 말대로, 음악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 시간에 필요한 걸 하겠다는데 제가 반문할 부분은 아닌 거 같습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받았던 개인 레슨 30분도 그만두었습니다. 다른 스케줄이 바빠지기도 했지만, 본인의 의견은 악보를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연주는 뮤직 디렉터가 music ensemble 시간에 봐주기 때문에 굳이 레슨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자신 스스로가 더 이상 벽에 부딪혀 도저히 못해내는 수준의 연주를 해야 할 때는 레슨을 받겠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은 기다려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첼로 연주를 계속하고자 하고 학교 음악 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대학에 가서는 클래식 악기 연주그룹에 합류를 해서 계속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이는 현악기인 첼로만 배웠지만 피아노 기초는 혼자서 습득했고 하프, 마림바 등의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에게서 다른 악기들의 연주법에 대한 것도 조금은 익히게 되었습니다. 클래식보다는 뮤지컬 음악과 재즈를 더 좋아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공부할 때 도움이 된다며 모차르트를 듣는  아이를 보면 다양한 음악을 섭렵하는 점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아이의 음악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을 하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결코 모범 답안은 아닙니다. 저희의 개인적인 경험이고 아이와 잘 맞는 방식일 뿐입니다. 하지만, 남들이 하기 때문에 또는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맹목적인 음악 교육은 재능과 시간낭비, 돈 낭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 음악인이 되고자 하는 음악 교육이 아니라면, 평생 음악을 즐기고 이야기할 만큼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이 진정한 음악 교육의 목적이 아닐까 하는 저의 생각 한 조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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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저 또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제 부족한 생각들에 대해 남겨주신 구체적이고 좀 더 다양한 각도의 의견들을 읽으며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마치 도화지에 그려놓은 선들에 입체감이 있는 색들이 입혀진 듯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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